
회사에 리더십 원칙이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교육에서 배운 모델도 있고, 조직문화 프로그램에서 강조한 가치도 있습니다. 각각은 그럴듯한데 실제로 판단해야 할 순간에는 무엇을 먼저 따라야 할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레고가 리더십 체계를 다시 정리할 때 마주한 것도 이런 문제였습니다. 경영대학원 IMD의 2023년 케이스 스터디에 따르면, 회사에는 서로 겹치는 리더십 모델과 육성·변화 프로그램이 최대 28개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좋은 리더십’을 설명하는 말은 많았지만, 어떤 행동을 기대하는지는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레고는 새 원칙을 하나 더 보태는 대신,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함께 사용할지를 다시 다뤘습니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세 가지 행동의 문구만이 아닙니다. 그 기준을 정할 사람, 기존 체계를 바꿀 권한, 팀에서 실제로 이야기할 방법을 함께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조직이 성장하면 새로운 과제에 맞춰 교육과 원칙도 늘어납니다. 어느 시기에는 실행력이, 다른 시기에는 협업이나 실험이 강조됩니다. 이전 프로그램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 체계가 더해지면, 직원은 서로 다른 기대를 동시에 받아들여야 할 수 있습니다.
IMD 케이스 스터디에서도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익숙한 모델에 애착을 갖고 있었으며, 여러 체계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프로그램의 개수보다 그 안에서 어떤 행동을 기대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가령 빠른 실행을 강조하는 프로그램과 충분한 합의를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지 판단하는 팀에는 두 원칙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안은 먼저 실험하고 어떤 사안은 함께 검토해야 하는지 설명이 없다면, 같은 행동도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칙이 부족한지, 이미 있는 원칙 사이의 관계가 모호한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교육을 추가할지, 기존 기준부터 정리할지는 문제의 원인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합니다.
레고는 여러 지역과 직무를 대표하는 직원 15명의 작업 그룹을 구성했습니다. IMD가 함께한 2018년의 이틀짜리 워크숍 세 차례를 거쳐 Leadership Playground를 설계했고, 2019년에 도입했습니다. 작업 그룹에는 필요하지 않은 기존 모델이나 프레임워크를 없앨 권한도 주어졌습니다.
직원들이 의견을 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면 이 과정의 의미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미 정한 문구에 공감하는지 묻는 것과,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기존 체계를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릅니다.
물론 참여 그룹이 모든 직원을 대신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경영 방향과 지켜야 할 가치도 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기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설명하고, 익숙한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남길 기준을 선택할 여지를 가졌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참여를 설계할 때에는 사람을 모으는 일과 결정권을 정하는 일을 함께 해야 합니다. 무엇은 바꿀 수 있고 무엇은 유지해야 하는지, 어떤 의견을 어떤 근거로 반영했는지 알려줄 수 있어야 참여가 결과로 이어집니다.
현재 레고의 공식 리더십 문화 안내는 Leadership Playground를 직위와 관계없이 누구나 리더십을 탐색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기본이 되는 행동은 Be Brave, Be Curious, Be Focused입니다.
Be Brave는 건설적으로 기여하고 익숙한 방식에 도전하는 행동, Be Curious는 질문하고 배우고 실험하는 행동, Be Focused는 회사의 목적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고 약속을 실행하는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 단어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단어가 실제 업무에서도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가입니다. ‘용기’를 충분한 검토 없이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고, ‘집중’을 다른 팀의 사정을 보지 말고 자기 목표만 지키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가상의 제품팀이라면 기존 계획의 위험을 근거와 함께 말하는 행동, 고객 반응을 확인할 작은 실험을 제안하는 행동, 여러 요청 가운데 이번 주에 끝낼 일을 정하는 행동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원칙을 구체적인 업무 행동으로 설명해야 팀원이 무엇을 해볼지 알 수 있습니다.
IMD 케이스 스터디에는 팀의 맥락에 맞게 새 리더십 모델을 논의하도록 돕는 Playground Builder가 등장합니다. 2023년 케이스 스터디에서 소개한 인원은 1,800명입니다. 원칙을 공지한 뒤 각자가 알아서 이해하게 두는 대신, 동료들이 팀의 대화를 돕도록 한 것입니다.
회사 전체에서 같은 원칙을 말하더라도, 실제로 적용하는 장면은 직무마다 다릅니다. 고객과의 약속을 바꾸기 어려운 팀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팀이 똑같은 방식으로 ‘용기’를 실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통 행동을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업무에서 어떤 행동을 뜻하는지 논의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우리 팀에서 이런 대화를 한다면 추상적인 칭찬보다 구체적인 선택을 돌아보는 편이 유용합니다. 어떤 의견을 내기 어려웠는지, 어떤 실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우선순위가 충돌했을 때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실천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실험을 권하지만 실패를 설명할 기회가 없다면, 용기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고 말하면서 계속 다른 요청을 추가한다면, 집중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지키기 어렵습니다. 대화는 이런 조건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레고 사례는 리더십 원칙을 짧게 만드는 일이 어떻게 조직의 운영과 연결되는지 보여줍니다. 기준을 만들 때 누가 참여하는지, 무엇을 바꿀 권한을 갖는지, 각 팀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함께 등장합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만으로 회사의 사업 성과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품과 시장, 유통과 전략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칩니다. IMD는 프로그램 설계에 함께한 기관이므로, 이 케이스 스터디는 참여 기관이 정리한 과정과 해석이라는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이 사례를 우리 조직에 가져올 때에도 레고의 세 단어부터 복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쓰는 원칙이 어떤 판단에 도움이 되고, 어디에서는 서로 충돌하는지 먼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새 모델을 도입할지 결정하기 전에 기존 체계를 함께 펼쳐놓고 이야기해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원에게 원칙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과, 그 원칙으로 실제 업무를 설명하고 선택하게 돕는 일은 다릅니다. 리더십 체계를 정리한 뒤에는 원칙을 업무에 적용하도록 누가 어떻게 도울지도 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