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반기 AI 교육은 계획대로 돌아갔습니다. 예산도 집행했고, 수료율도 목표치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하반기 계획을 짜려고 앉으니 막히는 지점이 생겼습니다. 올해 교육이 정말 잘 된 건지, 뭘 기준으로 다음을 설계해야 AX에 한발 가까워지는지 알 수 없죠. 애초에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 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출발점을 찾기 위해, 올해 15대 그룹 신년사를 HR의 언어로 다시 읽어봤습니다.
2026년 올해, 국내 15대 그룹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단연 'AI'였습니다. 총 44회로, 전년도 10위에서 1위로 9계단 상승했습니다. SK가 15회로 가장 많이 언급했고, 삼성이 10회, GS가 5회였습니다.
숫자보다 흥미로운 건 맥락인데요, 2025년 신년사의 1위 키워드는 '경쟁'이었고, 같은 해 AI는 처음으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불과 1년 만에 경영진이 AI를 언급하는 방식이 달라졌죠. 작년에는 "AI를 도입하겠다"였다면, 올해는 아래처럼 구체적인 선언이 내려왔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AI 도입이나 AI 변화의 시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경영진이 말하는 건 AI 도입이 아니라, 구성원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라는 요구입니다. 그리고 이 요구는 결국 HR 앞에 놓이죠.
"AI 네이티브 인재를 육성하라", "일하는 방식을 바꿔라”등의 방향도 있고, 교육 예산도 받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조직에서 AI 네이티브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의없이 교육부터 설계하고 있습니다. 경영진의 선언을 실제 실행 가능한 단위로 해체하는 단계가 빠진 채로 실행을 먼저하고 있는 겁니다.
구체적인 기준 없이 시작한 교육이 우리 조직에 필요한 역량을 진짜 향상시키고 있을까요?
그룹사별 신년사 메시지를 "구성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HR 관점으로 다시 읽어보고 분석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각 산업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수렴합니다.

SK, GS, 한화, KB금융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방향입니다. SK는 “현장의 경험과 지식에 AI 지식이 결합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했고, GS는 “현장 중심의 도메인 지식과 피지컬 AI를 결합해 비즈니스 임팩트를 보여달라”고 주문했습니다. KB금융은 “금융의 신뢰는 실력에서 나온다”며 AI 시대에도 도메인 전문성이 역량의 근간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현장 전문성이 경쟁력의 핵심인 산업군에 속해있다는 겁니다. 에너지, 금융, 제조처럼 도메인 지식의 깊이가 깊을수록 AI와의 결합 가치가 커지는 영역이죠.
삼성, 카카오, 네이버, 현대차가 강조하는 방향입니다. 삼성은 “AX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업무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정의했고, 카카오는 “AI 툴은 코파일럿이며, 핵심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는 하이퍼스케일 AI 모델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량을 강조했고, 현대차는 SW와 AI를 내재화해 데이터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요구했습니다.
네 기업 모두 AI 도구의 활용 능력이 아니라 AI를 전제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설계하는 방식 자체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AI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생각하는 사람을 원하는 겁니다.
롯데, 포스코, HD현대, KT가 요구하는 방향입니다. 롯데는 “AI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재화해 변화를 선도해달라”며 AI를 외주나 도구가 아닌 내부 코어 역량으로 삼을 것을 주문했고, 포스코는 “AI·DX 리더 전면 배치”를 통해 제조·R&D·안전 전 영역에 AI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방식을 명시했습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AI가 사무실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작동해야 의미가 있는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AI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의 저항을 설득하고 예외 상황을 조율하면서 끝까지 완수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죠.
"AI 전환을 준비하라"는 말은 방향입니다. 그 방향이 우리 조직에서 어떤 역량을 뜻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건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HR이 해야 하는 일이죠. 이 방향이 불분명한 채로 교육부터 설계하면 어떻게 될까요?
상반기 교육이 잘 됐는지, 수료율 외에 판단할 기준이 없다면 그건 측정 도구의 문제가 아닙니다.처음부터 무엇을 키워야 하는지가 불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면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도 따라옵니다. 출발점은 교육이 아니라 현황 파악입니다.